선교란 무엇인가 ?
대표 우종욱 목사
일반적으로 국내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전도(傳道)라고 하고, 타문화권에 가서 전하는 것을 선교(宣敎)라고 부른다. 물론 국내라 해도 좀 특별한 경우가 있다. 예컨데 국내에 거주하면서 외국노동자들을 전도대상으로 한다든지, 북한주민을 전도대상으로 하는 것들은 이차적인 선교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내라 할지라도 그 대상이 타문화권이며, 북한같은 경우에는 민족은 같지만 그 가치관이나 사상적인 면에서 볼 때, 선교적인 범주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문화시대를 맞이한 우리사회에서 이런 분야는 좀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와 반대로 외국에 나가서 한국인들만을 대상으로 목회하는 것도 선교인가? 이 경우도 지역은 외국이지만 그 대상이 한국인들만 이라면 엄밀히 선교라고 보고 어렵다. 물론 아주 넓은 의미에서 복음을 전하는 모든 사역에 선교라는 명칭을 붙이기도 한다.
이제 교회에서 성도들이 흔히 선교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 몇 가지 개념들을 정립해 본다
(1) “우리나라도 아직 복음을 다 전하지 못했는데 무슨 해외선교냐?”라는 견해
이러한 견해는 언뜻 공감이 가지만, 성경와 선교의 역사를 볼 때 가장 비성경적인 견해라 할 수 있다. 만일 국내를 다 복음화한 뒤에 외국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하면, 영국을 두고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다 순교한 아프리카 선교의 아버지 데이빗 리빙스턴이나, 인도 선교사로 일생을 헌신했던 윌리암 케리를 비롯한 수 많은 선교사들, 심지어는 자기 유대인 민족을 다 복음화하지 못했으면서도 유럽에 복음을 전한 사도 바울 같은 분들은 설명할 수 없다 . 만약 자기 나라를 완전히 복음화하고 그 후에 외국에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면, 어쩌면 복음은 지금도 예루살렘을 벗어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미국이나 영국이 완전히 복음화 되기를 기다렸다면 아직고 우리 한국땅에 복음이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세계 각처에 추수할 일군이 없어서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는 수 많은 영혼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우리 한국인들은 많은 선교사들이 이땅에 와서 피와 눈물로 복음을 전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복음의 빚을 지고 있는 자들이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명령은 이러한 지역에 동시에 복음을 전하라는 동시제 개념으로 기록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2) “선교사는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는 견해
결론부터 말한다면 선교는 특별한 사람 예컨데 목회자나 특별한 소명을 받은 사람 또는 특별한 기술이 있는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교는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특별히 오늘날은 전 세계적으로 평신도 전문인선교사들이 더 많이 요청되고 있다. 물론 특별한 기술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설령 그렇지 못하다 해도 선교를 할 수 있다. 선교는 기술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제가 신대원 시절에, 필리핀 뉴트라이브미션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루 숙박을 한적이 있다. 그때 선교사 게스트하우스에서 선교사들이나 방문객들을 위하여 식사와 세탁과 시설 관리를 담당하여 수고하는 영국인 노부부를 만났다. 그분들의 수고가 선교사들에게 얼마나 큰 힘과 용기를 얻게하는지 다 표현 못할 정도였다. 그 분은 세는 많았지만 누구보다도 훌륭히 평신도 선교사로서 그 일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 노부부는 교회집회에서 선교에 대한 도전을 받고 하나님께 물었다고 한다.
“하나님, 선교에 대한 도전은 받았지만, 저는 나이도 많고, 할 줄 아는 게 이런 일 밖에 없어요. ” 그때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럼 그것으로 선교하라”
그래서 여기까지 오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선교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일이다. 문제는 기술이나 신분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소명과 선교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마음의 중심이다.